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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희 식(食)기록] 경계의 다리 끝에서 마주한 쉼표, 안성 '솔향기'의 순한 미학
  • 권윤희 기자
  • 등록 2026-01-24 17: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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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른 점심, 음성과 안성의 경계를 가르는 다리 하나를 앞두고 차를 세웠다. 다리를 건너면 주소지가 바뀌는 묘한 경계선상, 왼쪽 길목에 자리 잡은 ‘솔향기’는 대소와 금왕, 맹동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드는 숨은 보석 같은 곳이다.


■ 20년 세월이 빚어낸 초록의 환대

식당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음을 뺏는 건 정갈하게 가꿔진 정원이다. 나무와 돌로 정성껏 길을 내고 잔디를 심어둔 이곳은 식당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잘 가꾼 별장 같다.

20년 전, 사장님 내외분이 직접 집을 짓고 나무를 심으며 일궈온 세월이 정원 곳곳의 분재 화분과 푸른 잎사귀마다 맺혀 있다. 정원을 어슬렁거리는 순딩이 노견 발바리 한 마리가 이 평화로운 풍경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 예약 필수, 점심 300명이 다녀가는 북새통
이곳은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터라, ‘예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려워 헛걸음하기 일쑤다. 여의치 않다면 아예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서둘러야 이 평온한 정취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시간대별 풍경의 변화다. 예전에는 저녁에도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코로나 시기를 거치고 회식 문화가 바뀌면서 요즘 저녁 시간은 오히려 한가한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점심만큼은 예외다. 하루 점심에만 300명 가까운 손님이 다녀간다니, 그 활기찬 북새통 속에서도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식당의 저력이 새삼 놀랍다.

■ 강원도 원통 사람의 자부심, ‘순한 맛’의 미학
가게 문을 열면 단발머리의 여사장님이 식당 안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일흔은 족히 넘기셨을 법한 고령임에도 뒷짐 지고 계시는 법이 없다. 테이블마다 다니며 인사를 건네고,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모습에서 20년 내공의 환대가 느껴진다.

사장님의 고향은 강원도 원통이다. 그래서일까, 이 집의 음식은 강원도의 산세처럼 순하다. 자극적인 양념으로 입을 현혹하기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맵고 짠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이 집의 ‘순한 맛’은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 예술이 된 15가지 밑반찬과 산채의 향연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면 15가지에 달하는 밑반찬이 깔린다. 사장님이 직접 그 계절에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드신다는 반찬들은 철마다 그 구성을 달리한다. 특히 처음 맛본 ‘누룽지 샐러드’는 평범한 재료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맛을 내는 이 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대표 메뉴인 산채비빔밥은 예술에 가깝다. 뽕잎(오디나무잎), 다래순, 취나물 등 세 가지 산채가 밥 위에 얹어 나오는데, 여기에 특제 부추 양념장을 넣어 비비면 입안 가득 고소한 산의 향기가 퍼진다. 질기지 않고 연한 나물의 식감이 씹을수록 달큰하다. 여기에 아삭한 식감의 더덕구이나 황태구이를 곁들이면 밥 한 공기가 부족할 지경이다.

■ 1,700평 정원의 무게, 그리고 남겨진 숙제
이렇게 잘나가는 식당이지만, 한편엔 사장님의 깊은 고민도 서려 있다. 이제는 식당을 운영하기에 벅찬 나이가 된 사장님은 정들었던 이곳을 내놓으셨다고 한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알짜배기 터라 관심 갖는 이는 많지만, 1,700평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와 그 가치는 선뜻 거금을 투자할 주인을 만나기 쉽지 않게 만든다.

누군가는 이 예술 같은 정원을, 또 누군가는 이 순한 손맛을 이어받아야 할 텐데. 사장님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이 공간이 부디 좋은 인연을 만나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 마음까지 배부른 식사 후의 여유
식사를 마치면 구수한 숭늉과 달콤한 수정과가 후식으로 나온다. 하지만 솔향기의 진짜 후식은 식후 정원 산책이다. 통창 너머로 보이던 나무들을 직접 마주하며 가족, 지인들과 두런두런 꽃 이름을 맞히고 식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배부름은 어느새 마음의 풍요로 바뀐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와 충청도가 나뉘듯, 솔향기는 일상의 번잡함과 식도의 즐거움을 갈라주는 고마운 쉼표 같은 곳이었다. 순한 맛이 그리운 날, 다시 그 다리 앞에 서게 될 것 같다.

[솔향기 이용 정보]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개좌길 64

    • 영업시간: 매일 11:00 ~ 20:30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정기 휴무)

    • 전화번호: 031-672-7643 (점심 방문 시 예약 권장)


[솔향기 메뉴]
    • 식사류
      산채비빔밥: 12,000원
      황태산채정식: 17,000원
      더덕황태산채정식: 20,000원


    • 오리 & 육류
      오리구이 (1마리): 50,000원
      오리 주물럭: 55,000원
      훈제오리 (1마리): 55,000원
      한방오리백숙: 70,000원
      제주오겹살 (180g):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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